전주만 들었는데도 필이 짜르르 오는 곡이 있지 않은가? 물론 히게단의 대부분의 노래가 그렇다. 히게단이 내놓는 곡을 들으면 언제나 10초 내로 ‘아, 이건 무조건 좋은 노래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특히 이 ‘숙명’은 인트로와 곡의 간주의 탑라인을 책임지는 신스 멜로디가 밴드 사운드 특유의 벅참을 최대치로 이끌어낸다.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신스와 보컬이 주를 이루면서도 일렉을 강조해야 할 부분이나 미디를 사용한 부분이 센스있게 삽입되어 단순히 ‘뻔한 락 사운드’를 넘어 트렌디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인트로에서 신스를 빵 터뜨리며 시작한 것과 대조적으로, 1절 벌스는 또 건반과 핑거스냅 소리만으로 세션을 채웠다. 그리고 드럼이 들어오며 점점 분위기를 고조시키다가, ‘닿아라’라는 가사를 기점으로 다시 인트로 반주가 반복되며 싸비를 확 강조시킨다. 2절 역시 비슷한 구성인데, 이 구성은 단순히 음악적으로 싸비를 강조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가사적으로 싸비에서 분위기를 전환시킨다. 벌스 A 파트에서는 지금까지 ‘나’의 경험을, B 파트에서는 그에 대해 느낀 감정을 ‘-ない’로 라임을 맞춘 가사로 채워넣었다. 그러다 싸비에 이르러서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포부를 담는다. ‘숙명’에 반항하지 못하고 절망한 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만이 알고 있는 ‘나’의 노력. 우리는 ‘숙명’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까? 사실 그건 아무것도 아니고, 숙명을 받아들여 아름답고 고결하게 살기보다는 아름답지 않더라도 그것을 불태워 우리의 삶을 주체적으로 찾아내 사는 편이 낫다. 이 곡은 긴장되는 순간, 불안한 순간,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무너지는 것이 나의 ‘숙명’처럼 느껴지는 순간에도 그것에 지지 않는 마음을 노래한다. (사실 처음 이 노래의 제목을 보고는 설마 ‘노래하는 것이 나의 숙명’ 같은 아티스트적 주제일까 생각했는데... 내 생각이 한참 짧았다. 언제나 리스너의 예상을 긍정적으로 뛰어넘는 아웃풋을 가져오는 밴드이다.) 이렇게 반복된 1절과 2절의 구성이 3절에 이르러서는 같은 보컬 탑라인을 브릿지의 형태로 이어가는데, 이전과 달리 다이내믹에 집중한 변주로 청자의 몰입을 돕는다. 거기다 드럼의 필인 이후로 터지는 마지막 싸비와 ‘끝났나?’ 생각이 들 때쯤 더블링을 친 마지막 한 소절까지. 이 곡을 라이브로 들은 사람들의 전율을 훔쳐오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