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LANGUAGE - XXX 리뷰

by. YvesLANGUAGE · XXX좋아요 0댓글 0
5.0

2016년 여름의 한 주말, 홍대의 HENZ 옆 골목에는 여느 주말과 다를 바 없이 오픈 전부터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당시 그곳에 있던 이들의 목적은 모두 같았다. 『The Anecdote』 (2015) 1주년 파티. 이미 잘 알려져 있는 그 모종의 이유로 해당 행사에 E SENS는 참여할 수 없었지만, 그 자리는 그의 동료 아티스트들이 대신하여 야심한 시각까지 광란의 파티를 주도했다. 그 동료 아티스트들 중 당시 가장 주목받았던 이는 다름 아닌 BANA의 듀오 XXX로, 『The Anecdote』를 둘러싼 여러 맥락 속에서 차츰 주목받기 시작하다가 2016년 7월 그들을 세상에 알린 『KYOMI』 EP (2016)를 발매한 직후였다. 나도 이들이 잘하는 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실제 모습을 보았던 건 당시가 처음이었다. 이 때 XXX의 모습을 본 이들이라면 모두 진즉 알아챘겠지만, 나 역시 저들이 언젠가 일을 한 번 크게 낼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애시당초 『KYOMI』 EP부터가 한 명의 딜라 키드와 한 명의 "대리수상자"가 해낸 일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형태와 수준의 작품이었는데, 그로부터 2년 뒤 이들은 모두를 충격 속으로 빠뜨리며 그 예감을 현실로 만들고야 말았다. 『LANGUAGE』 이야기다. 요약하자면 『LANGUAGE』는 힙합의 오랜 클리셰로 작용해왔던 자수성가 레토릭으로부터 자신들이 처절하게 배반당했다는 내용의 앨범이다. 『LANGUAGE』의 거의 모든 이야기들은 뛰어난 예술성이라는 속성을 지녔음에도 정작 그들이 "진짜"가 되지 못했다는 이야기, 대중성이 이격되었다 여겨지는 음악을 통해 설득력을 어필하면서도 정작 그 속성의 결여 때문에 "진짜"가 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두루 가리킨다. 「18거 1517」는 앨범에서 가장 뛰어난 트랙은 아닐지언정, 이야기의 측면에서 앨범의 알파이자 오메가라 칭할 만하다. 「Liquor」 (2016)에서 "나에겐 가족이 최우선"이라고 했던 김심야가 "아버지 차는 아무래도 멀쩡한 것 같아... 아버지, 벤틀리는 죄송하지만 없던 걸로."라고 말하는 순간 느꼈을 탈력감은 그 크기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이는 돈, 여자, 재물을 숭상하는 단순한 물질주의와는 거리가 꽤 있는 듯하다. "돈 얘긴 그만, I just wanna talk art. 예술은 인간, 예술은 욕심, 욕심은 돈, wait hold up."이라는 「뭐 어쩔까 그럼」에서의 가사는 물조차 사서 마셔야만 하는 이 세상에서 마주할 수 밖에 없는, 예술성과 대중성 간의 이분법적 도식이 가져다주는 딜레마다. 그리고 그 결론은 「Trust Us」의 마지막 가사로 곧장 귀결된다. "간지 쫓다보니 비참해진 꼴에 내가 그리고 있던 내 생활과는 조금 다른 그림 Fuck this." 2010년대 한국 힙합 씬을 지배한 동기였던 그 이분법적 도식의 동기와 효력을 김심야는 계속해서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올바른가 그렇지 않은가는 별 상관 없이, 그것이 호소력 있는 수사적 무기로 사용되어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의 이야기는 아예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의미심장한 가사와 김심야의 기가 막힌 랩으로 중무장한 『LANGUAGE』지만 사실 앨범에서 가장 뛰어난 트랙들은 역설적으로 김심야의 지분이 가장 낮은 트랙들이다. 이에 큰 공을 세운 건 당연하겠지만 FRNK의 역량이다. 지금껏 한국 힙합 씬에서 그보다 신시사이저를 과감하고 공격적으로 사용한 인물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는 테크노, 웡키와 UK 베이스 등 결이 판이한 원재료를 힙합의 토양에 이식했고 김심야는 그 토양 위에서 신명나게 칼춤을 춘다. 그런 면에서 「수작」과 「간주곡」 이 두 트랙의 존재만으로 앨범의 수준이 한 차원은 더 높아진 듯하다. 그러니까, "애매한 내용"만을 읊어대며 "이유와 증명을 어디서, 어떻게" 찾느냐는 물음을 던지는 것이, 정작 힙합의 주류 언어와는 상이한 비트 위에서, 때때로 온전하게, 때때로 개발살을 내가며 이루어진다는 「수작」에서의 그 모순이야말로 앨범의 동력원인 셈이다. 「간주곡」은 그보다 한 술 더 떠서 6분이 넘는 러닝 타임 대부분에서 김심야의 모습을 감춰버린다. 그 대신 등장하는 건 강이채의 바이올린 독주, 람보르기니 우라칸과 함께 질주하는 테크노 비트, Flume을 연상시키는 하프 샘플의 운용이다. 이런 면에서 저들이 하나의 긴 서스펜스를 이어가다가 김심야의 랩이 등장하는 순간은 청자가 받을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일순의 보상이나 다름 없다. 그리고 여기서도, 김심야는 누구보다 냉소적으로 허상의 적들을 날카롭게 쏘아붙인다. "좆같은 한국은 내 음악을 싫어해." 나는 M.I.A.처럼 거부할 수 없이 신명나고, A$AP Rocky처럼 소위 "간지가 나고," Vince Staples처럼 야망이 엿보이고, Tyler, The Creator처럼 특별한 유형의 음악이 과연 한국에도 있을지, 있다면 그는 과연 누구인지 찾아내기 위해 유년 생활을 모조리 바쳤다. 나는 XXX가 『LANGUAGE』를 통해 나의 오랜 갈증을 해소시켜주었다고 믿는다. 혹자의 말대로 어쩌면 FRNK의 프로덕션은 독자적인 일렉트로닉 트랙으로서는 부족할지도 모르고, 김심야의 가사는 분노와 호소라기보다 질투와 투정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고 있다는 사실이 그 일말의 부족분을 채워주는 듯하다. FRNK는 최소한 김심야의 랩이 올라갈 자리 정도는 마련해주고 있고, 김심야는 또 자신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그 분위기들을 FRNK가 대신 그려내주기를 원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가령 컷오프 필터로 내내 난장판을 쳐놓는 「Ugly」는 훨씬 더 난잡할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앨범 내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울분을 토해내는 「Trust Us」는 템포가 비슷한 「Just Like」 (2018)처럼 비교적 여유있는 비트여서는 곤란했을지도 모른다. 다이나믹듀오나 가리온, 슈프림 팀같은 래퍼 듀오도 저마다 듣는 맛이 있는 법이지만, Jazzyfact가 진즉 알려주었듯 한 명의 래퍼와 한 명의 프로듀서가 서로의 조력자가 되는 건 또 다른 일이다. 1 더하기 1이 2라는 것은 세 살배기도 아는 진리지만 XXX는 그런 수식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시너지를 강렬하게 내뿜고 있다. 이들이 한국 힙합 씬의 The Avalanches가 될지 Lauryn Hill이 될지는 현재로서는 분명 미지수이나, 현재 시점에서 XXX는 사실상 사라진 듀오가 되었다. 그 이유에는 이들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바닥이 난 것을 본인들이 긍정한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FRNK가 NewJeans와의 협업에서 큰 성과를 거두며 다른 길로 멀찍이 나아가버린 탓이 크다―그 "경제적 상황의 차이"는 김심야 역시 NewJeans와의 협업에서 거둔 성과로 어느 정도 격차가 좁혀진 듯하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XXX의 디스코그래피는 그저 한 줌일 뿐인데, 이들이 거둔 성취는 그 어느 역사적인 힙합 아티스트들의 그것에 결코 뒤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그들도 알듯 단 한 장의 앨범으로 헤게모니를 쟁취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고, 누군가가 그들이 존재하는 줄도 몰랐다고 말해도 별 도리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떤 누군가는 그들이 한때 한국 힙합 씬에서 가장 멋들어진 듀오였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냐만, 나는 저들의 존재를 똑똑히 목도했고 기억하고 있는 그 "어떤 누군가"로서, 『LANGUAGE』는 정말이지 완벽한 앨범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들은 우리에게 묻는다. "이것 또한 예술인가." 하지만 동시에 「간주곡」을 통해 그들은 선언적으로 말한다. "내 지루한 음악이 해답이니까." Rating : 7/7 Best Track : 「간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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